우리에게 성령을 보여달라!
요한복음 14:8-17 (2010년 5월 23일. 성령강림주일예배)

 

emoticon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성령께서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던 120명의 무리에게 임하사 그들로 하여금 세상 속으로 들어가 복음을 담대히 전파하도록 권능을 주신 날이기도 합니다. 성령 강림 후 제자들은 사뭇 달라졌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은 그들은 두려움이 없어졌습니다. 그들은 길거리나 광장에서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성령께서 말하게 하시는 대로 자기들의 언어와 다른 외국어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모두 놀라 어리둥절해졌고,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어떻게 이 갈릴리사람들이 다른 나라 말을 이렇게 유창하게 말하면서 설교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사도들의 설교는 듣는 사람들을 설득하기 충분한 능력이 있었습니다. 하긴 베드로가 설교했을 때 그날 삼천 명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서 세례를 받았다고 하니 그 능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어렵지 않게 헤아려 볼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사도들을 통해 많은 기적과 표적이 나타나도록 하셨고, 그 결과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과 경외심을 가지고 그들을 대하도록 했습니다.

 

복음을 전해 듣고 믿는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았고, 함께 모여 서로 교제하고, 빵을 나누어 먹으며, 기도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 함께 모여 모든 물건을 공동으로 사용하며 살아갔고, 재산과 모든 소유를 팔아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 뜰에 모였습니다. 집집마다 돌아가며 함께 모여 기쁘고 순수한 마음으로 식사를 같이 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하였으며, 모든 사람에게서 칭찬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는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늘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교회는 날이면 날마다 부흥해 갔습니다. 참고로, 위의 이야기는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후 어느 정도 교회생활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그는 성령의 존재를 부인하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령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가 성령에 대해 온전한 이해를 갖고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성령에 관해 이해하기 힘든 이유는 사도들이나 초대교회 지도자들이 성령에 관한 분명한 가르침을 성경의 기록으로 남겨놓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초대교회 사도들과 지도자들이나 성령에 관해 그릇된 지식과 생각을 가졌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사실 그들은 성령이 누구이신지를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지만 자신들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던 성령을 후세대 그리스도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자세한 기록으로 남겨 놓는 일에는 힘쓰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사역하기에 너무 바빴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그 당시엔 성령께서 너무나 강권적으로 교회에 역사하셨던 시대였기 때문에 굳이 그들이 성령에 관한 설명을 기록으로 남길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예로 들어보자면, 지금껏 한 번도 사과를 먹어보지 못한 사람에게 사과에 관한 학습을 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사과 맛을 그 학생에게 가르쳐 줄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좋은 방법 하나는 백과사전을 가져다가 그곳에 있는 사과에 관한 기록을 읽어주는 것이겠지요. 다음과 같이 말입니다.

 

사과(沙果•砂果, Apple)는 장미목 장미과의 사과나무의 열매로,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재배되는 과일 품종 가운데 하나이다. 사전적으로 평과(苹果)라고도 한다. 나무는 높이 5~12미터에 이르는 작은 낙엽수이며, 넓고 밀집된 잔가지가 많은 수관을 가진다. 잎은 번갈아가며 배열된 모양의 단순한 타원형으로 끝은 날카롭고 톱니모양의 모서리, 가냘프고 솜털이 나 있는 하단 부분, 5~12센티미터 길이와 3~6센티미터 너비, 2~5센티미터의 잎꼭지의 특징을 가진다. 꽃은 잎과 함께 봄에 나는데 꽃 색깔은 흰색이며 처음에는 엷은 핑크색을 띠기도 한다. 직경은 2.5~3.5센티미터이며 꽃잎은 다섯 개이다. 열매는 가을에 익는데 보통 지름이 5~9센티미터이다. 드물지만 15센티미터에 이르기도 한다. 씨앗에는 미량의 사이안화물이 함유되어 있다. (Wikipedia Internet Dictionary)

 

그런데 사실 백과사전에 기록된 내용을 읽어주는 것보다 더욱 효과적인 학습 방법은 학생이 실질적으로 체험을 통해 학습 내용을 배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즉, 사과 하나를 가져다가 그가 그것을 만져보고 먹어보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학습 방법이겠지요.

 

바로 이런 차원에서 초대교회 사도들과 지도자들은 굳이 성령에 관한 기록을 남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들이 성령에 관한 풍부한 기록을 남겨 새로 믿는 자들로 하여금 그것을 읽고서 성령을 이해하도록 할 것이 아니라 날이면 날마다 자신들이 충만하게 경험하던 성령을 새로 믿는 신자들도 동일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었을 것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령께서 활발하게 역사하셨던 사도시대가 끝난 이후부터 발생했습니다. 성령에 관한 정확한 가르침이 담긴 기록이 없으니 후대 사람들이 성령에 관해 제각기 다른 견해를 갖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의 경험이나 자신들이 속한 신앙 전통에 따라 성령에 관한 이해도 달랐습니다. 어떤 이들은 성령의 존재는 믿되, 성령을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의 보조자로 이해하기도 했고, 어떤 이들은 성령을 하나님을 천사들과 같은 존재로 이해하기도 했습니다.

 

교회가 성령에 관한 다양한 생각으로 혼돈하고 있을 때, 터툴리언이라는 신학자(“희랍 기독교의 대부”라고 불리우기도 함. 160-220 A.D.)가 삼위일체 개념(독립된 세 인격체, 한 분 하나님: Three Persons, One Substance)을 교회에 처음으로 소개하게 됩니다. 그의 가르침에 의할 것 같으면, “성령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함께 동역하셨고, 그 분들과 동일한 관계이시며, 성자 하나님을 통하여 성부 하나님께서 보내신 분이시다”는 것입니다.

 

내가 조금 전에 지적했던 대로, 사도들이 성령과 함께 교회를 일으켜 세웠을 때 그들은 너무 바빴던지라 신학적인 체계를 잡는데 시간을 쏟아부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당시엔 수많은 신학적 견해가 여기저기에서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기도 하고 곧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이것의 의미는 곧 삼위일체론이나 그리스도론과 같이 중요한 교리 역시도 사도들 시대에는 아직 구체화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성령에 대한 이해도 다양했듯 성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생각도 천차만별이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의 인성만 존중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그의 신성만 존중했습니다. 그리고 아리우스(Arius)와 그의 추종자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가장 완벽한 피조물이긴 하지만 여전히 하나님 아버지보다 낮은  존재라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교회의 하나 되지 못한 다양한 신학적 견해는 수많은 위험스런 이단들을 양산해 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콘스탄틴 황제(Constantine I)의 주도 하에 교회 공회가 니케아(니케아는 오늘날 터키의 İznik)에서 기원 후 325년 열리게 되었는데, 이것을 우리는 “첫 번째 니케아 공회 (The First Council of Nicaea)” 라고 부릅니다. 참고로, 이 공회는 이방인들을 교회로 받아들이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사도들의 주도 하에 열렸던 “예루살렘 사도 공회” (사도행전 15장) 이후 첫 번째로 열린 공식적인 교회 회의였습니다.

 

니케아에서 열렸던 첫 공회는 세계방방곳곳에 흩어져 있던 교회를 대변할 지도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단일화된 신학적 관점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이 모임의 가장 주된 관심은 예수님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하나로 모으는데 모아졌습니다. 결국 이 공회는 그리스도께서 누구인지에 관한 사도들의 가르침을 분명하게 확인하고 다음과 같이 재천명하게 됩니다: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과 동일한 한 분의 참된 하나님이시다.”

 

참고로, 니케아 첫 공회에서 만들어졌던 신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한 분을 믿는다. 그는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시다. 우리는 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그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시고, 아버지와 동일한 본질을 가지신 하나님이시다. 그는 빛 중의 빛이고, 참 하나님이시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나셨고, 아버지와 동일한 본질을 가지셨다.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지음 받았다. 그는 우리 인간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사람이 되셨다. 그는 고난 받은 후 삼 일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가 하늘로 오르셨다. 그리고 그는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을 심판하러 다시 오실 것이다. 우리는 성령을 믿는다. [만일 누구든지 “그가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그가 지음 받기 전엔 그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무(無)에서 지음 받았다”; “그는 다른 자 또는 다른 본질이다”; 또는 “하나님의 아들은 창조되었거나, 변하거나 또는 달라진다” 라고 주장한다면, 그들은 마땅히 거룩한 교회와 사도적 교회로부터 정죄 받음이 마땅하다.] (번역: 이상호) 

 

물론 후에 이 신조는 381 A.D. 콘스탄티노폴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다듬어졌고, 사도신경과 함께 오늘날 교회에서도 교회예배에서 종종 낭독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다행히 콘스탄니노폴 신조에서는 다음과 같은 성령에 관한 내용을 니케아 신조에 첨가함으로써 성령에 대한 교회의 이해를 좀더 확실하게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성령은 주님이시고,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오셨고,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예배와 영광 받으실 대상이시며,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분이시다. (번역: 이상호)

 

교회 역사적으로 볼 것 같으면, 성령을 신학적으로 논하려는 시도가 있을 때, 많은 경우 그들은 오해 받기 십상이었고 이단으로 몰리곤 했습니다.

 

사실 성령은 우리 인간의 머리로 이해하기 힘든 분이신데, 그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머리로 영적인 세계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이 불가능하지요. 그래서 동방정교 교사들은 성령을 설명할 때 이렇게 우회적으로 표현하기까지 했습니다.

 

아버지의 형상(얼굴)은 아들에 의해 나타나고, 아들의 형상(얼굴)은 성령에 의해 나타난다.

 

여기서 우리는 성령의 형상(얼굴)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분이 아니 계시다는 점을 주의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해서 이렇게 주장하고 싶어 합니다. “성령을 우리에게 보여달라. 그리하면 우리가 성령을 믿겠다. 그리하면 우리가 성령의 지도하심을 절대적으로 따르겠다.” 마치 오늘 우리가 읽었던 본문에서 빌립이 예수님께 아버지 하나님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면 그 분을 더욱 분명히 믿을 수 있겠다고 외쳤던 것처럼. “주여,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주십시오. 그리하면 그를 믿겠나이다.” (요한 14:8)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보면, 이런 말이 이야기가 나옵니다.

 

나는 그래서 밀림 속에서의 모험에 대해 한참 생각해 보고 난 끝에 색연필을 가지고 내 나름대로 내 생애 첫번째 그림을 그려보았다. 나의 그림 제 1호였다. 그것은 이런 그림이었다. 

littleprince6.jpg

 

나는 그 걸작품을 어른들에게 보여 주면서  내 그림이 무섭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모자가 뭐가 무섭다는 거니?” 하고 대답했다. 내 그림은 모자를 그린 게 아니었다. 그것은 코끼리를 소화시키고 있는 보아 구렁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른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보아 구렁이의 속을 그렸다. 어른들은 언제나 설명을 해주어야만 한다. 나의 그림 제 2호는 이러했다. 

TheLittlePrince.jpg

 

사실 아이들은 믿는데 굳이 많은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들은대로 믿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너무 단순해서 일까요? 물론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 18:3)

 

성령에 관한 어린이들이 믿음을 설명해주는 좋은 예화가 있어 들려드립니다.

 

교회 밖에서 자전거 타고 노는 소년을 신부님이 발견하고서 교회로 들어가라고 말했다. 그러자 소년이 대답했다. “그러면 누군가가 나의 자전거를 훔쳐갈 거예요.” 그때 신부님은 성령께서 그것을 보호해 주실 것이라고 말해주자 소년은 신부님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갔다.

 

미사 시간에 신부님이 소년에게 십자가를 그리는 방법을 가르쳐 주면서 따라 해보라고 권했고, 소년은 이렇게 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아들의 이름으로. . . 아멘.”

 

신부가 물었다. “성령님은 왜 말하지 않니?” 그때 소년의 대답이 이러했다. “그는 밖에서 나의 자전거를 지키고 있을 거예요.”

(http://www.top20fun.com/funny_jokes/4976.html)

 

“성령을 보여달라.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다”라고 외치는 어른들에게 성령을 설명하긴 해야 하겠는데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요? “바로 이것이 성령이시다”라고 보여주면서 말해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성령은 보이는 분이 아니시기에 애로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굳이 설명을 필요로 하는 어른들을 위하여 성령에 관한 예를 들어서 설명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좀더 많은 설명을 제공해야 할 겁니다. 그래야 나의 설명이 더욱 신빙성 있게 보일 테니까.

 

성경은

 

• 성령님을 살아 계신 하나님이라 부릅니다.
•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이라 부릅니다.
•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라 부릅니다.
• 성령님은 보혜사라 부릅니다.

 

성경은

 

• 성령님을 물로 비유하십니다.
• 성령님을 기름 부음으로 비유하십니다.
• 성령님을 불로 비유하십니다.
• 성령님을 구름과 빛으로 비유하십니다.
• 성령님을 비둘기로 비유하십니다.
• 성령님을 바람으로 비유하십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도록 하십니다.
• 우리가 회심하도록 하십니다.
•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도록 하십니다.
•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중재하시고, 힘들 때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
• 우리가 성령 말씀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은 하나님의 창조 역사뿐 아니라 우리 인간들의 삶 속에 지대한 역할을 감당하십니다. 그래서 바로 이러한 성령을 구약성경은 80여곳에서 언급하고 있고, 신약성경은 240여군데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나누었던 마지막 만찬에서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 14:16, 1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성령을 믿으십니까? 여러분은 성령께서 하나님이심을 믿으십니까? 여러분은 성령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심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성령의 소원을 알고 계십니까? 성령께서 여러분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땅끝까지 증거하길 원하신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알고 있다면, 그 분과 함께 힘써 일해보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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