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으로서 비극적 사건을 어떻게 이해하나?
누가복음 13:1-9 (2010년 2월 28일 주일예배)
지난 주 초 헤이티의 프레발 대통령이 인근 지역 국가 정상 회담 차 멕시코에 도착한 후 지난 2월 대지진으로 인한 사망자 숫자가 30만이나 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참으로 놀란만한 숫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숫자가 어떤 자료에 의거한 것인지는 정확하진 않지만, 한 나라를 책임진 국가 지도자의 입을 통해 나온 숫자이기에 그냥 듣고 흘러보낼 수만은 없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사진을 통해 사망자 숫자가 어느 정도 되리라는 것을 헤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길거리에서 수거된 시신만해도 무려 20만 구가 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무너진 건물 잔해로부터 시신들을 수거하고 있는 중입니다. 사망자 숫자는 충분히 30만에 이르를 것입니다.” 30만의 인명 피해를 낳았던 헤이티 대지진은 왜 일어났던 것일까? 헤이티의 피해자들과 그 유가족들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까요?
지난 주 화요일 인도네시아 서 자바(West java)에 위치한 한 고을에서 몬순 우기로 인해 대형 산사태가 발생했습니다. 1000 푸트나 되는 방대한 영역으로부터 흙과 돌이 흘러내려 조용한 한 시골마을을 덮쳤습니다. 구조대가 생존자 구출을 위해 힘써 보지만 그 안에 묻힌 사람들의 생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입니다. 지난 목요일까지 발표된 집계로는 26여 명이 실종되었고, 17구의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왜 산 중턱이 주저앉으며 엄청난 양의 흙과 돌덩이가 흘러내려와 한 마을을 덮쳤을까요? 우리는 사랑하는 가족을 여윈 이 마을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다음은 하와이 지방회의 충성스러운 비서 레이라니로부터 지난 수요일 (2월 24일) 하와이 지방회에 소속된 모든 교회에 전달된 이메일입니다.
하와이 지방회 교우들께:
오늘 아침 우리는 빅 아일랜드에 있는 캠프 메코키코에서 수고하고 계신 테드 레스넷 목사님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가 전한 소식은 일리노이스 블루밍턴로부터 자원 봉사 선교팀이 캠프장에 와서 수고하던 도중 그 자원봉사팀의 한 멤버가 어제 사망했다는 것입니다. 어제 급작스럽게 쓰러져 깨어나지 못한 덕 우드번의 아내 주디 우드번을 위하여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마할로,
레일라니 주케무라
빅 하와이 캠프장에 와서 자원 봉사하던 덕 우드번이 급작스레 쓰러지며 사망이 이르게 된 연유가 무엇일까요? 그가 자원봉사하던 중 쓰러져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사건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까요?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예기치 못한 크고 작은 비극적인 일들이 연일 계속해서 일어납니다. 그렇다면 연일 되풀이 되는 비극적인 일들을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까요? 오늘 우리가 읽었던 본문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해 참으로 유익한 해답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두 가지 예기치 못한 비극적 사건이 소개되고 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을 죽였는데, 그 죽은 자들의 피가 하나님께 올려드릴 희생 제물과 뒤섞인 사건입니다.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희생 제물은 깨끗해야 하는데, 죽임 받은 자의 피가 그 제물에 뒤범벅 되었으니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남겨진 어떠한 문헌도 이 사건에 관한 기록은 없지만 우리는 다음과 같이 그 사건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갈릴리의 유다(Judas of Galilee)라고 알려지고 있는 유다 가우로니타(Judas Gaulonita)는 갈릴리를 본거지로 삼아 로마에 대항하는 민란을 일으킨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사도행전 5:37이 이 사건을 소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에는 인구 조사를 할 때 갈릴리의 유다라는 사람이 나타나 백성들을 이끌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임을 당하자, 그를 따르던 사람들 역시 다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쉬운성경). 그는 로마 황제의 권위를 부정했고, 하나님의 백성이 로마 황제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고로 그 지역의 총독 빌라도가 민란에 동참한 사람들을 처행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러할 때 그 민란에 동조한 갈릴리 사람 몇이 하나님께 희생 제물을 올려드리러 예루살렘 성전에 왔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그들이 하나님께 희생 제물을 올려드리는 바로 그 장소와 그 시간에 빌라도가 보낸 병정들에 의해 처참히 살해 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결과 그들이 흘린 피가 하나님께 올려 드린 제물 위로 흘러 제물이 피와 뒤범벅 되어버린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노라면, 어떤 사람들이 와서 이 사건에 관하여 예수께 말하며 이렇게 물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갈릴리 사람들이 성전 안에서 빌라도의 손에 죽임 받고 그들의 피가 제물에 섞인 것은 그들이 행했던 죄의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소개된 두 번째 사건은 무너진 실로암 망대에 관한 사건입니다. 고고 역사 학자들의 발굴 자료에 근거해 볼 때, 실로암 망대는 사실 그다지 크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망대의 안쪽은 직경 약 6 미터 정도 되고, 바깥쪽은 약 7 미터 정도 크기였습니다. 이것은 옛 예루살렘 성벽 안쪽에 세워졌더랬는데, 실로암 연못과 히노암 계곡 사이에 위치했습니다.
이 망대가 무너질 때 18명이 그 밑에 깔려 죽었다는 사건은 어떤 역사 문헌에도 기록되어 있진 않지만,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이 사건을 이야기했던 것으로 보아 그것은 예루살렘에서 실질적으로 일어났던 일이었을 겁니다. 그때 사람들이 와서 예수께 그 사건에 관해 말하면서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그 열여덟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죄를 많이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은 게지요, 그렇죠?”
자, 그렇다면 유다가 일으킨 민란에 동조했던 갈릴리 사람들이 죽임 받고 그들의 피가 제단의 제물에까지 뒤범벅이 된 것과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예루살렘의 열여덟 사람들의 죄가 컸기 때문에 그런 비극적인 죽임을 당했던 것일까요? 다른 말로 표현해서, 그들의 죄가 다른 사람들의 죄보다 컸기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악을 심판하시는 차원에서 그들을 치셨던 것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비극적인 일을 당하게 되면, 바로 이러한 부정적인 시각을 갖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죄악 때문이다. 그것은 그 사람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채칙 곧 심판이다.” 바로 이러한 시각의 대표적인 경우가 어느 날 갑자기 욥에게 닥쳐온 비극적인 재난을 목격했던 그의 친구들이 가졌던 시각이었습니다.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내가 보건대 악을 밭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 다 하나님의 입 기운에 멸망하고 그 콧김에 사라지느니라. (욥 4:7-9. 개역성경)
하나님이 어찌 심판을 굽게 하시겠으며, 전능하신 이가 어찌 공의를 굽게 하시겠는가? 네 자녀들이 주께 득죄하였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그 죄에 붙이셨나니, 네가 만일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 전능하신 이에게 빌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정녕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 (욥 8:3-6. 개역성경)
예기치 않게 다가오는 비극적인 재난을 죄의 결과, 하나님의 심판으로 보는 것이 옳을까요? 과연 이러한 시각이 비극적 사건에 대한 성경이 가르치고 있는 올바른 해석일까요? 물론 유대인들은 재앙이 임하면 그것을 죄악의 결과로 이해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일수록 주변에서 일어나는 비극적인 사건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래서 보수진영에서는 지난 헤이티 대지진을 헤이티의 무당과 무술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CBN 방송을 통해 보수진영의 선두에 서 있는 팻 라버슨 목사님은 헤이티 지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밝히기까지 했습니다:
옛날에 헤이티에 어떠한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사람들이 말하길 꺼려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때 그들은 프랑스의 말굽 아래 놓여 있었더랬는데. . . 그들이 다같이 모여 사단과 계약 관계를 맺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은 사단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우리를 프랑스로부터 독립시켜 준다면, 우리는 당신을 섬기겠습니다.” 이것은 내가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때 사단이 대답했습니다. “좋다. 계약이 성립되었다.” 그 이후부터 저주와 저주가 끊이지 않고 헤이티에 임하고 있는 겁니다.
물론 그의 말은 헤이티 건국 신화를 인용한 것이긴 하지만, 나는 그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성경을 읽어보노라면, 사람들의 죄악에 대한 결과로써 임하는 재난도 있습니다. 예로 들자면,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은 바로와 그의 백성의 완고함 때문이었지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있을때, 갑자기 땅이 갈라지면서 250명의 사람을 산채로 삼켜버렸는데, 그 날의 재앙은 고라와 그와 함께 당을 지었던 무리의 반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민 16장). 이외에 성경의 많은 부분에서 사람들의 죄악에 대한 심판으로써 임하는 재앙이 소개되어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비극적인 재난 모두가 사람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라고 매도해서는 아니 됩니다. 자연적 현상으로 일어나는 재난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재난이라는 것이 바로 이 범주에 속합니다. 물론 그러한 재난을 당한 사람들에게는 큰 손실과 아픔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재난을 당한 사람들의 죄가 많아서 그런 심판을 당한 것이라고 해석해서는 아니 됩니다.
참고로, 지진이라는 것을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땅 아래 여러 개의 암판(plates)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시죠? 그리고 그것들이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도 아시죠? 위아래로 움직일 수도 있고, 앞뒤 혹은 좌우로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동할 때, 자연스럽게 움직이면 좋을텐데, 대부분이 그렇지 않습니다. 이들이 이동할 때, 옆에 있는 암판을 밀어대면서 이동합니다. 그러면 그 옆 암판 역시 반사적인 저항을 하게 되지요. 그러면 서로가 서로에게 주는 충격으로 인하여 그 둘이 접촉된 부분이 균열되고, 결국 지면이 균열되는 지진이 발생하게 됩니다. 암판 사이의 균열된 부분을 진원(the focus of the earthquake)이라 부르고, 진원 위쪽을 진앙(the epicenter of the earthquake)이라 부릅니다.
화산이라는 것도 한 번 생각해 봅시다. 화산 역시 발생한 곳과 그 주변은 심각한 피해를 입긴 하지만, 이것 역시 자연적인 현상으로 발생하는 것입니다. 화산이 일어나는 경유는 이렇습니다. 지구 중심은 매우 뜨겁고 용액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시죠? 그래서 지구 중심 가까이에 있는 암반이 뜨거운 열을 견디지 못하고 녹게 됩니다. 그리고 그 녹은 암반(마그마라고 부르기도 함)은 농도가 낮기 때문에 주변 암반 사이로 스며 올라오게 되지요. 이때 올라오는 녹은 암반은 물과 용해된 가스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것이 지구 표면 위로 부상할 때 큰 폭음 소리를 내며 솟구쳐 오르게 됩니다. 이 원리를 이해하고 싶으면 다음의 경우를 상상해 보십시오. 코카콜라 병을 마구 흔들어 놓은 후, 그것의 투껑을 열면 안에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렇게 볼 것 같으면, 지진이나 화산은 그것들이 발생한 곳에는 막대한 손실을 입히긴 해도 지구 전체를 고려할 할 때 굳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지진은 암판들이 움직일 때 발생하는 스트레스를 해소해 주는 기능을 하고, 화산은 강력한 열로 인하여 녹은 암반과 가스가 어디론가 빠져나갈 수 있는 역할을 해주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것들이 어디로 분출되지 못하고 안에 갇혀 있게 되면, 언젠가는 더욱 심각한 재앙을 지구에 입히게 됩니다. 그리고 지진과 화산은 새로운 광물질은 지구 표면에 가져다 주어서 토질을 부유케 하고, 지구 표면에 새로운 변화를 주며, 새로운 생태계가 창조되도록 합니다. 보석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 사실 역시 기억해야 할 겁니다. 지구상에 있는 희귀한 광물질 가운데 많은 것이 바로 이러한 경로를 통해 형성됩니다.
지구상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예기치 못한 재난 모두를 죄의 결과이거나 하나님의 심판으로 매도해서는 아니 된다는 교훈은 오늘 본문에 기록된 예수님의 대답 가운데서도 분명히 강조되고 있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의 피가 제물과 섞인 것은 그들의 죄악의 결과라는 주장에 대해 예수께서는 단호하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니라.” (3절) 또한 실로암 망대가 무너졌을 때 그 밑에 깔려죽은 열여덟 사람은 그들의 죄악이 다른 사람들보다 많아서 그런 재앙을 만났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예수께서는 단호하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니라.” (5절)
우리가 예기치 못한 수많은 사건들이 우리 주변에서 늘 일어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일들을 만날 때, 그런 재난으로 인해 큰 슬픔 가운데 있는 피해자들에게 정죄의 화살을 날리기 보다 그런 사건을 보면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삼아야 합니다. 정죄는 우리에게 맡겨진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께 맡겨진 고유한 영역입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 역시 그런 재난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늘 명심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그 어느 누구도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자연적인 사건은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 모두에게 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는 예수께서 들려주신 다음의 말씀을 깊이 가슴에 새겨야 할 것입니다.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3, 5절) 물론 오늘 본문에 언급된 그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악 때문에 제물에 피를 섞게 되었거나 망대에 치어죽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당한 재난을 듣고 보면서 우리 자신에게도 그러한 일이 닥칠 수 있음을 명심하고서 자기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는 회개의 계기를 삼으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시간이 언제 우리에게 닥칠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재난은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 모두에게 임할 수 있습니다. 고로 아직 안전하다 싶을 때, 바로 그 시간에 자신을 돌이켜 보면서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한 시간이 다가오면, 그때는 이미 회개할 기회가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6-9절에서 재난이 없는 바로 이 순간이야말로 우리가 회개하고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순간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회개하라. 그렇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