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말을 들으라!
누가복음(Luke) 9:28-36; 출(Exodus) 34:29-35; 고후(2 Corinthians) 3:12-4:2

(2010년 2월 14일 주일예배. 예수 그리스도 변화주일)

 

emoticon오늘 본문에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어느 날 예수께서 세 명의 제자들, 곧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예수께서 기도하시는 동안 그의 얼굴 모습이 변했고, 그의 옷자락 역시 하얗게 빛났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어떤 두 사람이 나타나더니 예수님과 더불어 말을 나누길 시작했는데, 그와 함께 대화를 나눈 분들은 모세와 엘리야였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그분의 떠나가심에 관한 말씀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한편으로, 밀려오는 잠을 도저히 이겨내지 못하고 졸고 있던 베드로와 다른 두 제자가 환한 빛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고,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하신 예수님과 그 곁에 서 있는 두 사람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제자들은 막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을 떠나가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때 베드로가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33절) 하지만 사실 베드로는 그 순간 자기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너무 엄청난 광경을 목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베드로가 그런 말을 하고 있을 때, 구름이 밀려오더니 순식간에 그들을 둘러 덮었습니다. 그리고 구름 속에서 그들이 두려워 떨고 있더랬는데, 한 소리가 그들의 귀에 들려왔습니다.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그 소리가 사라진 이후 그들을 둘러 덮었던 구름 역시 물러 갔고, 그들은 그 자리에 홀로 서 계신 예수님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산 위에서 자신들이 직접 보고 들었던 것이 너무나 놀라웠던던지라 그들은 입을 다물고서 목격한 것을 한 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산 위에서 예수께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하신 것을 세 제자들이 목격했던 사건에 관한 이야기이지요. 그리고 교회력은 그 영광스런 변화산 사건을 기념하면서 오늘 주일을 변화주일(Transfiguration Sunday)이라고 부르고 있지요.

 

성경을 보노라면, 사람의 육신조차 찬란하고 영광스럽게 변화되었던 사건은 오늘 본문에만 언급된 것은 결코 아니었지요. 출애굽기 (Exodus) 34:29-35에서도 이와 흡사한 사건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빠져나와 광야에 머물고 있던 때, 모세가 산 위로 올라가 사십 일 밤낮을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지냈습니다. 그 동안 그는 어떤 음식도 먹지 않았고, 물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명을 돌판에 적는 일에 혼신의 열정을 다하였고, 그 작업을 다 끝내고 그는 언약의 돌판 두 개를 손에 들고서 시내 산으로부터 내려왔습니다.

 

한편으로,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이야기를 할 때 그 얼굴에 빛이 나타나길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는 자신의 얼굴에서 빛이 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산에서 내려오는 모세를 본 아론과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은 그의 얼굴에서 빛이 나고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고로 그들은 모세의 곁에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했습니다.

 

모세가 그들을 부르자 아론을 비롯해서 백성의 모든 지도자들이 그를 향하여 몸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그들에게 말을 건네자 그 때에야 비로소 그들이 모세에게 가까이 나아왔습니다. 그런 다음 이스라엘 온 회중이 모세 앞으로 나아왔고, 모세는 그들에게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주신 모든 계명을 들려주었습니다. 백성에게 말하기를 마친 다음 모세는 수건으로 자신의 얼굴을 다시 가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호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대화를 나눌 때는 수건을 벗었습니다. 물론 그가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것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들려주고자 밖으로 나왔을 때는 그 백성이 자신의 얼굴이 빛나는 것을 보게 되었으므로 수건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습니다.

 

나는 위의 두 이야기를 묵상하던 중 하나의 공통점을 보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의 얼굴에서 나타나는 빛에 끌리지 못하도록 수건으로 얼굴을 가려야만 했습니다. 한편으로, 베드로와 다른 두 제자가 환한 광채를 띠고 계신 예수께서 영광 가운데서 모세와 엘리야와 더불어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서 그 영광스러운 광경이 좋아서, 그 황홀함 가운데 머물러 있기를 원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구름으로 둘러덮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한 소리를 들려주셨는데, 그 소리는 바로 다음과 같습니다.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35절)

 

그런데 사실 모세의 얼굴에서 나타난 찬란한 광채는 궁극적으로 사라져 갈 성질의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궁극적으로는 사라져 갈 자기 얼굴의 광채를 이스라엘 자손이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게 하려고 자기 얼굴에 수건을 덮은 모세처럼 하지 않습니다.” (고후 3:13) 그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으로부터 흘러나왔던 찬란한 광채 역시 사라질 성질의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세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서 내려오셨을 때, 그로부터 여전히 광채가 나타나고 있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모세에게서 발산되었던 광채나, 예수님으로부터 발산되었던 광채는 그들이 하나님과 가까이 머물러 있을 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곧 그 광채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찬란한 빛의 후광이었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1:23, 24에서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그 성[하늘나라]에는 해와 달도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빛이 되고, 어린양이 그 성의 등불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세상 모든 민족이 그 빛 아래 걸어다니며, 온 땅의 왕들도 영광스런 모습 그대로 성으로 들어올 것입니다.” (쉬운성경)

 

만약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 되면, 우리 얼굴 역시도 광채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이 사실을 믿지 못하시겠다고요? 예로 들어 보자면 이렇습니다. 뜨거운 장작불 곁에 한동안 머물러 있다가 그 자리를 떠나더라도 한동안 우리의 몸에 여전히 온기가 남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성경을 깊이 묵상하거나, 은혜 가운데 설교 말씀을 듣거나, 혹은 깊이 있는 기도 속으로 들어가노라면, 여러분의 얼굴에서 빛이 납니다. 이런 경험을 해보지 않으셨나요? 그리고 그 빛은 한동안 우리에게 남아 있어서 우리가 지나치는 사람들까지도 목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빛은 오래 가진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 빛은 성경을 묵상하던 중, 은혜 가운데 말씀을 듣던 중, 혹은 깊은 기도 가운데 우리가 만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광채(은혜)였기 때문입니다. 곧 우리로부터 빛이 나타난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빛을 받아 그것을 반사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노라면,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드러내는 분이 계십니다. 그들의 얼굴이 환히 빛이 납니다. 혹시 그런 분을 보셨습니까? 그리고 지금 여러분의 주변에서 그런 분을 보고 계십니까? 그런 분을 만나노라면, 너무나 좋지요. 너무나 부럽지요? 하지만 그런 분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역시 그런 빛을 드러내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받아서 반사주는 사람이 되려고 힘써 노력하십시오.

 

어떻게? 답은 매우 간단합니다. 모세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그 분과 가까이에서 말씀을 나누는 동안 그의 얼굴로부터 광채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께서 산 위로 올라가 기도하던 중 그의 몸에서 환한 광채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가자 그들은 하나님의 광채로  감싸였던 것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만약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노라면, 우리 역시 얼굴이 환하게 밝아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 광채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발산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비추인 하나님의 광채인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마 5:14) 나는 이 말씀을 단순히 선한 행실이라고 비유적으로만 이해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빛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빛을 받아 그 빛을 어두운 세상을 향해 비춰주는 반사체입니다. 나는 이렇게 믿습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광채를 어두운 세상으로 지속적으로 반사해 주어야 한다고. 우리에게서 흘러나오는 환한 빛을 세상 사람들이 보고서 빛의 근원 되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올 수 있도록.

 

바로 이러한 반사체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 곧 세상에 빛이 비추어주기 위해서, 우리 자신이 먼저 빛의 근원으로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최대한 가까이.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해주지 않으셨습니까?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 8:12)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 . . .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예수를 따르다=예수께 귀를 기울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이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오길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이 하나님의 광채와 영광 속으로 들어오길 원하십니다. 어떻게 내가 감히 그런 말을 겁 없이 할 수 있느냐구요? 사실 이것은 내 자신의 말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사도 바울의 말씀을 대신 전했을 뿐입니다. “오늘날까지도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세의 글을 읽을 때, 그들의 마음에는 수건이 덮여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주님께 돌아올 때, 그 수건은 벗겨질 것입니다. 주님은 성령이십니다. 주님의 성령께서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수건을 벗은 얼굴로 주님의 영광을 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주님의 형상으로 변화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릅니다. 그 영광은 성령이신 주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고후 3:15-18)

 

고로 이젠 더 이상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두려워 할 이유가 없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 얼굴의 광채를 똑바로 보지 못하도록 얼굴을 수건으로 가렸다고 합니다 (고후 3:13). 그 이유는 그들이 모세를 통해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 보다는 그의 얼굴에서 나타는 찬란한 광채에 마음이 빼앗기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께서 구름으로 제자들을 둘러덮으셨던 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 보다는 그 분으로부터 발산되는 찬란한 빛과 그 영광에만 마음이 빼앗기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구름 속에서 제자들에게 들려왔던 소리를 기억하십시오.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우리가 이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고후 3:12)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모세의 얼굴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보았던 영광보다 더 큰 영광을 볼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가 산 위에서 목격했던 영광보다 더 큰 영광을 볼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소망을 가지고 있고, 또한 자신 있게 이 소망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어떠한 것도 우리의 눈을 가리울 수 없습니다. 그 어떠한 것도 하나님의 영광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우리를 가로막을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 안에서 그 수건이 벗겨졌고, 그 장벽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영이십니다. 주님의 성령께서 계시는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고후 3:16, 17) 주님의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지 않으십니까? 고로 우리에게 무슨 수건이 필요하고, 무슨 장벽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우리 역시 히브리 기자처럼 담대히 이렇게 외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4:16)

 

사람의 얼굴에서 광채가 나는 것을 보고서 무서워 그에게 가까이 가지 못했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두려워하지 맙시다. 기도하던 중 환한 광채를 나타내시며 영광 가운데 들어가셨던 예수님을 거의 목격하지 못할 뻔 했던 제자들처럼 너무 피곤하다고, 너무 졸립다고, 너무 바쁘다고 영적인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지 맙시다. 오히려 담대하십시다. 깨어납시다. 성경을 펼쳐 읽읍시다. 성경을 묵상하면서 우리에게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읍시다. 기도합시다. 하나님과 깊이 있는 영적 교제를 나눌 수 있도록 깊이 있는 기도 속으로 들어갑시다. 그래서 우리 모두 매일마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까이 더욱 가까이 다나아갑시다.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구름 기둥에서 저희에게 말씀 하시니 저희가 그 주신 증거와 율례를 지켰도다.” (시 99:7) 너무 좋은 구절이 아닙니까? 구름 기둥에서 친히 그의 백성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그 분으로부터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했던 그 백성이 너무 부럽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오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하나님과 더불어 대화하기 원하십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렵니까?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시렵니까? 아니면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계시렵니까?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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